두꺼비바위와 박이방 전설
마장골 비탈진 산 아래에 오두막을 짓고 사는 박이방이 오늘도 거나하게 취해서 길을 재촉한다. 하루라도 술을 마시지 않으면 답답해서 못살겠다는 그는 비틀거리며 길을 걸어오다가 길가에 있는 주막집으로 또 들어간다.
"외상 술 한 잔 주슈."
문을 열고 들어서면서 외치는 박이방의 말을 듣고 주모는 부엌에서 나오며 빙글빙글 웃어댄다.
"이방나리 외상값이 얼마인 줄이나 아시고 술을 달라는 거요. 어서 외상값이나 내슈."
주모가 곱게 눈을 부릅뜨며 손을 내민다. 그는 그 손바닥을 탁 치며,
"내일 집문서 갖다 드리리다."
"흥 집문서 그까짓 게딱지만한 집 거기에도 문서가 있나. 그 갓이나 풀어 놓으면 술을 드리리다."
"그래."
그는 서슴치 않고 갓끈을 풀고 갓을 풀어 놓는다. 주모가 갖다주는 술병에서 잔으로 떨어지는 술을 바라보다가 잔이 가득 부어지자 번쩍 들어서 꿀꺽꿀꺽 마신다. 그리고는 병을 들고 흔들어 본다. 술이 없어서 빈 병이 뱅뱅 흔들리자 그 병을 가만히 상위에 놓고 나간다. 그리고 두꺼비바위 쪽으로 먼저 가서 쓰러지며 속으로 엉엉 운다.
"선조님, 선조님, 후손으로서 뵈올 낯이 없습니다. 한 충신의 후예가 오늘에 와서 체면을 못 지키고 아전이라니 이게 말이 되옵니까?. 그러나 목구멍이 포도청이니 어찌하옵니까?. 선조님 또한 고을 군수의 부름에 응하지 않으면 당장 벌을 받아야 하옵니다. 선조님, 선조님. 용서하여 주사이다. 아이고, 아리고..."
그에게는 학식도 있었다. 또한 후덕해서 많은 사람으로부터 받들어지는 그가 아전벼슬에 등청할 때 집안에선 모두 반대했었다. 그러나 양반의 지조만이 지조냐고 막상 나가긴 했지만 그에겐 정말 사정이 있었다. 당장 지목되어 나오라는 그의 목숨도 문제였지만 어떻게 하면 성격이 팔팔한 원님으로부터 고을을 편안하게 하는가가 문제였다.
두꺼비바위에서 속의 갈증을 풀은 그는 집 사립문 앞에 이르러 큰 소리를 친다.
"이리 오너라. 여기 박이방 들어가신다."
양반의 집안이었지만 이방이라는 것이 조금도 부끄럽지 않았다. 집안에서는 아이들이 창피하다고 이불을 뒤집어 쓴다. 아내가 겨우 나가서 문을 열어준다. 세상에 법이 없어도 살 아내다. 천생연분이다.
"오늘도 역주 취하셨네요."
"그럼 했소이다. 한양에서 친구가 모처럼 찾아왔는데 그냥 있을 수 없잖아요."
"그럼요 잘 하셨네요. 잠자리를 펴드릴까요."
"그렇게 하구려."
아내는 잠자리를 펴면서 한양에서 왔다는 남편의 친구 잠자리가 걱정이 돼서 지나가는 말로 말을 한다.
"집은 누추해도 이불, 요는 새 것인데 집에 모셔오지 않구요."
"글세 그걸 내가 깜박했군 허...참"
거짓말을 한다는 것이 두서가 안잡히는 듯했다.
"그 한양에서 오신 친구분 성함이 뭐래요."
"성함."
박이방의 가슴이 아찔했다. 그러나
"응, 성함. 성함이랄게 있나. 심..심 가만히 있자 심영검, 그렇지 심영검이야. 과거에 급제할 사람이지."
"심영검."
아내는 남편이 띄엄띄엄 말하는 그 이름을 외우는 듯 몇 번이고 지껄인다.
"세상 햇빛 볼 날이 있겠지."
그가 항시 하는 대로 이 말을 남기고는 스르르 눈을 감는다. 그리고 코를 곤다. 고목 나무 아래 정안수를 떠놓고 두 손을 모아 빌며 정성을 드린다.
"신령님, 신령님. 두메에 사는 이 아낙네의 소원을 들어주사이다. 쇤네의 서방님이 오늘도 친구분과 어울리고 돌아왔나이다. 서방님은 오늘 한양에서 온 친한 친구분과 어울렸다 하나이다. 그분은 심영검이란 분으로서 과거에 급제하기 위해 글을 읽고 있다 하나이다. 신령님, 신령님. 그분이 어서 과거에 급제하시고 우리 서방님에게도 영광이 있기를 우리 박씨 가문의 앞날에 서광이 있게 하여 주사이다. 신령님, 신령님. 보살펴 주사이다."
아내가 정성을 드리는 소리가 야음을 타고 방안에까지 들려온다. 아내를 찾다가 텅 빈자리에 손을 얹고 허전해서 눈을 뜬 박이방은 가만히 귀를 기울이다가
"제기랄, 심영검이 어디 있어."
하고 눈을 붙인다.
그 날부터 아내의 정성은 하루도 거르지 않았다. 아내에게 공연한 거짓말을 해서 아내를 고생시킨다고 생각하였으나 그렇다고 바로 잡기는 체면이 서지 않아 그냥 내버려두었다.
그런데 세상엔 기이한 인연이 있는 법일까. 당시 한양에는 명문 집에 심영검이란 도령이 있어서 막 과거에 급제하고 벼슬이 내리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도령인 심영검은 대대로 관직에 올라 큰 벼슬을 한 집안의 아들로 앞날이 촉망되는 도령이었다. 그래서 어쩌면 처음부터 암행어사 같은 벼슬이 내리지 않을까 그렇게 추측들을 하고 있었다.
오늘도 술이 취해서 귀로에 오른 박이방은 길가 주막집에서 또 한 잔을 하고 소원을 비는 두꺼비바위 근처로 오른다. 두꺼비바위에 무릎을 끓고 그는
"아이고, 아이고. 세상에 제가 미친놈이 아니옵니까. 벼슬살이가 꿈이라 홧김에 한 사람의 이름을 댔더니 아내가 매일 밤 정성을 드리옵니다. 신령님, 대체 우리 가문이 무슨 죄가 있다고 이대로 버리옵니까. 네. 우리 가문을 풀리게 할 때도 되고 저도 이만하면 벼슬살이 할 만하지 않습니까 네....."
그는 홧김에 두꺼비바위를 치며 하소연을 했다. 그때였다.
"술 주정이 심하구나. 이제 풀릴 때가 됐다."
하는 소리가 하늘에서 들려왔다. 그래서 그는 허리를 더욱 굽혔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쓰러져 잠이 든다. 또 한 번 하늘에서 소리가 들려온다.
"요즈음 세상이 너처럼 취해 있느니라 네가 귀인을 만나서 꼭 이 잠자는 세상을 깨우치게 되리라. 두꺼비는 바삐 가질 않아 천천히 걸어가지."
박이방이 눈을 뜬다. 그리고 바위에 대고 허리를 몇 번 굽혔다가 집으로 향한다. 하늘엔 별빛이 찬란했다.
사람들의 추측대로 심영검은 조정에 들어가서 벼슬을 받을 때 암행어사였다. 거기다가 임금께서
"어사는 짐의 말을 잘 들라. 그대는 귀를 씻어 백성의 소리를 귀담아 들어야 한다. 썩은 관리가 있다면 용서할 것 없이 처단하여야 할 것은 물론이오. 억울한 백성들에게는 자비를 베풀고 한이 있다면 한을 풀어주도록 하라. 즉 백성의 소리는 천심이라는 것을 잊지 말고...내 그대의 솜씨에 기대를 거노라."
하는 기대까지 있었으므로 심영검은 큰 희망을 가지고 한양을 떠났다.
그는 충청도에 들어서서 더욱 아래쪽으로 내려가기 위해 금산 땅에 이르렀다. 금산 고을을 한 바퀴 돌고 다시 전라도 무주 쪽으로 가기 위해 길을 재촉하다가 주막을 지나 또 한참 걷다가 길을 잘못 들었는지 길이 자꾸 소로로 변해갔다. 어느덧 해는 기울고 땅거미가 지기 시작하였으나 다시 주막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는 가다보면 민가라도 있을 것을 예감하고 한참 길을 걷는데 한쪽에서 사람 통곡하는 소리가 들린다.
"아리고, 아이고. 신령님도 무심하시지. 이 박가 놈을 언제까지 버려 둘 셈입니까?. 아이고, 아리고"
암행어사 심영검은 무슨 통곡소리인가 하고 두꺼비바위 근처로 가까이 갔다. 거기엔 술이 만취한 박이방이 주정인지 정성을 드리는지 바위를 때리며 울고 있었다.
두꺼비바위 근처에서 박이방을 만난 심영검은 술 주정을 가가 앉히고 그를 따라 그의 집으로 갔었다. 하룻밤을 신세진다고 말하자 박이방의 아내는 건너 방에 새 이부자리로 잠자리를 마련해 줬으며, 산나물로 차린 밥상을 박고 흐뭇하게 저녁을 들은 다음 잠자리에 들었다. 심영검이 잠자리에 들고 한참 있어서였다. 뒷문 쪽으로 이상한 여인의 목소리가 들려서 귀를 기울여 봤다.
"비나이다. 비나이다. 우리 서방님은 오늘도 한양에서 내려오신 친구분과 어울렸다 하나이다. 그분의 성함은 심영검이라 하나이다."
자기의 이름이 들려오자 깜짝 놀랐다. 한 번도 이곳에서 자기의 이름을 밝힌 바 없었다.
"그분은 과거에 급제하기 위해 공부를 하는데 아마 지금쯤 급제하여 벼슬길에 올랐을 겁니다. 그분이 어서 우리 서방님께 벼슬을 할 수 있게끔 인도하게 공을 드려주사이다."
암행어사 심영검은 자기가 이곳에 온 것을 미리 아는 듯 공을 드리는데 탐복을 하곤 잠자리에 든 다음 이튿날 새벽 일찍 일어나서 박이방을 불렀다.
"노형의 본관은 어디입니까?."
"**입니다."
"하면 이방이라 하셨는데 어째서 아전 벼슬을."
"허... 허...참, 노형은 그래 글을 하나 지어 보실까요."
심영검이 글귀를 외우자 그는 손쉽게 받아서 글을 짓는다. 그가 읊는 글은 참으로 식견이 높은 글귀였다. 한참만에 심영검은 탄복한 듯 무릎을 탁 치면서
"박이방의 학문이 이렇게 깊은 줄이야."
하고는 그 자리에서 일어나서
"내 지나는 선비이나 꼭 한 번 박이방을 부를 때가 있겠소."
그리고 방문을 열고 나온다. 박이방의 모든 것을 알아차린 심영검이 문을 열고 나오자 동백기름으로 곱게 단장한 그의 아내가 머리를 수그리고 전송을 한다.
"그런데 노형의 성함은..."
"또 만날 때 가르쳐 드리리다. 내 꼭 박이방을 찾겠소."
하고는 총총이 그 집에서 사라졌다.
그 후 심영검은 삼남을 훑어 본 다음 한양에 올라와서 바로 박이방을 올라 오라 했다. 그리고 박이방의 처지를 여러 대감에게 누누이 설명을 하고 벼슬을 하게 되는데 후에 판서까지 오른다 한다.
우연한 기회에 참으로 우연히 토한 사람의 이름 석자가 인연이 되어 영화를 누린 박이방은 그 후 마장의 두꺼비바위를 희망을 풀어주는 바위라고 지목을 하였다고 하는데 세월이 흐른 다음에도 이곳 사람들은 자기네들의 소원을 풀어주는 바위가 두꺼비바위라 하여 이곳에 와서 불공을 드리곤 하였다 한다.
금산군 남일면 마장리에 가면 호미동 또는 비모골이라고 부르는 마을에 두꺼비바위가 있다. 꼭 두꺼비를 닮았다 해서 두꺼비바위라고 부르는데 이 바위가 바로 정성을 드려 판서에 오른 박이방의 바위라 부르며 느긋하게 오래동안 정성을 드리면 꼭 소원이 성취된다고 전해오는 바위다.
이 내용은"여기가 금산이다"에 수록된 내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