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래둠벙 전설
부리면 수통리 남쪽으로 조그마한 웅덩이가 있는데 이 웅덩이를 달래둠벙이라고 부른다. 또한 오누둠벙이라고도 부르는 이 웅덩이엔 성적인 충동을 주는 희한한 이야기가 전해 온다.
지금으로부터 약 500년 전 이곳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산 너머에 갈씨라는 부유한 구두쇠 영감이 살고 있었다. 재산을 모으기 위해서는 형제간의 정도 뿌리치는 그였지만, 그의 아내는 후덕하고 착했으며 슬하에 딸과 아들 남매를 두었는데, 그 남매도 어려운 사람의 사정을 아는 남매였다.
어느 해 심한 가뭄이 들어 많은 사람이 굶주려서 허약해져 다른 마을에서는 굶어 죽는 사람이 많았으나 이 마을은 가난한 마을이었지만 그런 사람이 없었다. 이에 이상하게 생각한 구두쇠 영감은
"참 이상하단 말이야. 이웃집 뺑덕이네도 벌써 굶어 쓰러질 때도 되었고, 건너편 용팔이네 집도 벌써 곡식이 떨어질 때가 되었는데, 그럭저럭 꾸려 가는 것을 보면 참 용하단 말이야."
하며 고개를 갸우뚱거릴 때 아내는 옆에서 모르는 척하고 있었지만 가슴이 두근거렸었다. 사실은 심한 가뭄이 들자 마을에서 굶는 사람이 나오기 시작하였을 때, 그녀는 광속 깊숙이 쌓여있는 삼 년 묵은 쌀을 남편 몰래 어려운 집에 돌렸으므로 남편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 후 가뭄은 계속되었다. 한해에 끊기는 가뭄이 아니라 그 이듬해에도 가뭄이 들었고 그 다음해에도 가뭄이 들었다. 논밭엔 물기가 말라서 흙이 모래처럼 부서졌으며, 산에 있는 나무도 누렇게 햇빛에 타고 있었다. 심한 가뭄이 들었으나 수원이 좋은 구두쇠 영감집은 농사를 그런 대로 지어 볏섬이나 쌓아 놓았었다. 마을 주변 부락에서는 굶어서 죽는 사람들의 시체 처리도 어려울 때였다. 그러나 이 마을은 끄덕 없었으며 구두쇠 영감의 아내 덕분에 허기는 면하고 있었다. 그런데 오랫동안 몰래 일을 하다보면 들키는 것이 보통인 것처럼 구두쇠 영감집에 난리가 나기 시작했다.
산 너머 멀리 전라도에서 사는 가난한 선비가 배가 고파서 견디다 못해 부황이 났을 때, 과년한 딸이 부리땅 갈씨라는 구두쇠 영감네 집엔 쌀가마가 쌓여있다는 말을 풍문에 듣고 밤에 몰래 집을 떠나와서는 그 날 새벽에 갈씨네 마을에 들어와서, 새벽에 마을에서 가장 좋은 집이 갈씨 구두쇠 영감집이라고 생각하고 담을 넘어서 뛰어 들어왔다. 그리고 한가한 사랑방에 앉아있는 그림자를 발견하고 방문을 열고 들어가서는 갈씨에게 통사정을 했다.
"제 몸은 어떻게 되어도 좋습니다. 저를 사 가십시오. 쌀 열 가마도 좋고 한 가마도 좋습니다. 부모님이 굶주리는 것을 볼 수가 없습니다."
어두운 새벽녘에 자기집에 쳐들어 와서 통사정하는 색시의 목소리도 고왔으며 아름다운 색시였다. 구두쇠 영감은 불빛에 비치는 색시의 모습을 보며 타오르는 욕정을 억누르지 못하고
"쌀 열 가마다."
하고 색시를 덥쳤다. 그리고는 날이 새는 새벽에 집안에 난리가 나기 시작한 것이다. 색시를 덥치고 무주땅에 집 한 채 마련해 주기로 약속하고 같이 살기를 부탁한 다음 쌀 열 가마를 우선 달구지에 실어 보내기 위해서 머슴에게 달구지를 준비하게 하고 광속에 들어갔다가 쌀가마가 텅텅 비어 있는 것을 보고는 소리를 치기 시작했다. 광속에 둔 삼 년 묵은 쌀을 어떻게 하였느냐고 아내를 족치기 시작하였을 때 아내는 순순하게 대답했다.
"우리만 살고 마을 사람들이 굶어 죽는 것을 볼 수는 없잖아요."
구두쇠 영감은 몽둥이를 들고 닥치는 대로 아내를 때리기 시작하였으며, 그 날로 아내를 친정으로 쫓아버렸다. 아내를 쫓아버리고는 머슴을 시켜서 전라도땅 색시네 집에 쌀 열 가마를 당장 보내고는 다시 방으로 들어와서 색시와 잠자리를 펴고는 생전 부엌에도 들어가 보지 못한 딸에게 밥을 지어오라고 호통을 치는 것이었다. 방안에서는 구두쇠 영감이 색시와 놀아나는 이상한 괴성같은 소리만 들려왔다. 듣다못해 얼굴이 화끈 달아 오른 남동생이
"누나, 우리도 어머니 따라 가지."
하고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창피해 못살겠다. 먹을 것을 가지고 가야지."
"그럼 김서방 보고 쌀 역 가마 먼저 지고 가라고 그러고, 우리도 어서 봇짐을 챙기지."
그들은 쉽게 합의를 하고 머슴인 김서방에게 아버지 몰래 쌀 열 가마니를 빼내서 떠나게 하고는, 사랑방에서 들려오는 아버지의 괴성 섞인 이상한 숨결소리를 들으면서 외가집을 향해서 집을 떠났다. 그들이 집을 나서자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들은 바삐 뛰기 시작했으며 산을 하나 넘었을 때는 빗방울이 제법 굵게 떨어지기 시작했다. 한여름이라 모시 치마 저고리를 입고 앞을 걸어가는 누나는 옷이 몸에 감겨서 꼭 알몸으로 걸어가는 것 같았다. 누나의 뒤를 따라가던 동생은 걸음이 빠른 누나의 뒤를 쫓으면서도 누나의 몸만 바라보며 희한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누나도 여자는 여자다 아이고..."
그가 외마디 소리를 지르자 누나가 뒤를 돌아다보았다. 누나의 얼굴은 천사처럼 어여뻤다. 동생은 누나를 뚫어지게 바라보고는 다시
"아이고 미치겠네. 아이고아이고."
하고는 무릎을 맞대고 혼자 신음하기 시작했다.
"아이고 누나와 잘 수는 없고. 아이고아이고."
그는 다시 둠벙 가까이 와서는
"누나, 난 누나하고 같이 못 가겠어. 아이고아이고 누나, 누나는 왜 그렇게 고으냐?"
그는 그렇게 외마디 소리를 지르며 둠벙에 풍덩하고 빠지면서
"누나하고 같이 못 잘 바에야 죽는 게 나아."
하고는 물에 빠져 죽었다 한다. 둠벙에서 허우적거리는 동생을 바라보고 둠벙가에서 발만 동동 구르던 누나는 동생이 죽어서 물에 떠오르는 것을 보고는
"이 바보야 죽지는 말고 달래나 보지. 왜 달라는 소리도 못해 이 바보야."
하고 한참동안 울부짖다가 둠벙에 풍덩하고 빠져 죽었다 한다. 그들 남매가 빠져 죽은 둠벙엔 그 후 한밤중엔 여자의 목소리로
"달래나 보지 이 바보야, 죽지말고 달래나 보지. 이 바보야."
하고 소리치는 소리가 들려온다 하여 이 둠벙을 달래둠벙 또는 오누둠벙이라고 부른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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